근무하는 병원 외 다른 병원을 방문할 별다른 기회가 없는 저에게 장연구 집담회는 공식적으로 새로운 곳을 접하게 해주는 연결고리입니다.
금요일 저녁은 어디를 가나 교통대란이기 때문에 신나게 외래도 반으로 딱 접고, 길 찾기의 최대 강자인 T map을 이용하여 52차 집담회 장소인 고려대학교안산병원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하지만……쑥스럽게도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관계로 여유 있게 병원안팎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병원은 건립된 지 25년이 지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주변환경도 쾌적하였습니다. 또한, 원장님이신 최재현 선생님의 보살핌으로 병원 직원분들에게 극진한 환대를 받아, 처음 온 병원임에도 근무한 병원인 것 마냥 푸근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불철주야 “장 사랑” 골수 선생님들 100여분이 참여한 가운데 구자설 선생님의 사회로 증례 발표가 시작되었고, 저희 병원 증례 발표가 8번째여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 집담회도 그러하였지만, 특히 이번 집담회는 드문 증례들만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강북삼성병원에서 발표한 궤양성 대장염으로 진단되어 약물 치료 하였으나 호전 없던 증례는 CMV와 HIV가 동시 감염된 경우였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스테로이드 불응성 궤양성 대장염으로 평가되어 inflixmab을 사용하였는데, 활동성 바이러스성 감염이 있으면 염증성 장질환이 악화되고, inflixmab 사용은 금기라는 고정관념이 여실히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HIV 감염이 있을 경우 CD4+ T 림프구 수가 감소하게 되는데, CD4+ T 림프구는 염증성 장질환의 병태생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염증병 장질환이 호전되거나 악화 없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HIV 감염 때 anti-TNF-alpha의 사용이 HIV-1의 복제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을 수 있음을 더불어 알게 되었습니다.
원주기독병원에서 발표한 자궁내 태아사망으로 제왕절개술을 받은 젊은 여자 환자에게 오른쪽 팔의 근력저하와 혈변이 발생한 증례는, 결국 자궁내 융모암의 빠른 진행으로 뇌와 소장 전이로 확진된 경우였습니다. 자궁내 융모암의 전이로 인한 위장관 출혈은 약 2%로 드물며, 조직검사로 인한 확진이 쉽지 않으므로 임신이나 유산 등이 선행된 환자에서 이 질환이 의심될 경우 beta-hCG를 꼭 측정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산과 동시에 전이성 암을 진단받은 환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던 증례였습니다.
제게 가장 흥미로운 증례는 카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에서 발표한 크론병으로 진단받고 17회 adalimumab 치료 후 발생한 HS purpura에 대한 증례였습니다. 보통 HS purpura를 유발한 약제는 재사용을 하면 안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동일환자에서 HS purpura 예방목적으로 저용량 MTX를 사용하면서 adalimumab을 재사용할 경우 HS purpura를 30% 정도에서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본 증례의 경우도 이와 같이 치료하여 adalimumab을 4회까지 재 투여 하였고, 현재까지 HS purpura 재발 없이 치료 중이라고 하니 환자 치료에 있어 고정관념은 버려야 할 것이라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발표한 ‘AIDS 환자에서 동시 발생한 아메바 장염과 CMV 장염’은 발표한 전임의 선생님의 재치있는 언변이 돋보이는 증례였습니다. 좌중에서 내시경 이후 환자의 감염 사실을 알았을 때, 내시경 의사가 어떤 조치를 취하고 내시경 기구는 어떤 소독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깊이 숙고하며 대답했던 “제가 이제 전임의를 시작한 지 4개월이라서…”란 말은 장내를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들면서 정겨운 분위기를 더욱 훈훈하게 해 주었습니다. 내시경 검사가 보편화됨에 따라 이를 통한 감염의 기회도 증가하기 때문에, 내시경 기기 세척 및 소독지침을 준수하고 의료진이 감염되지 않도록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표준주의 지침을 잘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계기였습니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2부 첫 번째로 저희 전임의 선생님 발표였지만, 순서인지 모르고 호명되는 바람에 허겁지겁 발표하러 나가 제가 오히려 긴장되었습니다. 하지만, 크론병에 동반된 이차성 아밀로이드증과 HSV 십이지장염에 대해 준비한 대로 차분하게 발표하여 제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크론병에 동반된 HSV 십이지장염은 아직 보고된 바가 없으며, 크론병에 이차성으로 아밀로이드증이 동반될 수 있으나 의심하지 않으면 진단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증례였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free kappa/lambda ratio가 정상이고 immunofixation에서 polyclonal gammopathy를 보여 이차성 아밀로이드증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동일한 증례를 경험하신 한동수 선생님께서 serum amyloid protein A를 직접 측정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해 주셔서 저에겐 좀 더 뜻 깊은 배움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집담회가 끝나고 근처 최고의 맛집인 한우전문점에서 성대한 뒷풀이가 있었습니다. 한우의 비싼 가격에 놀라고, 적당히 구워진 그 맛에 또 놀라고, 그런 한우가 끊임없이 나와 계속 놀라고, 시종일관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최재현 선생님께서 모든 테이블에 돌리신 특제 된장찌개는 언제 고기를 먹었는지 모르게 밥 한 그릇을 비우게 한 밥도둑이었습니다.
애정어린 대화와 덕담, 웃음이 만발한 즐거운 뒷풀이를 끝내고 서울에 도착하니 어느덧 11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집담회 개최에 도움을 주신 고려대학교안산병원 최재현 선생님 이하 소화기내과 선생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매끄럽고 원활한 진행으로 집담회를 열띤 토론의 장으로 만들어 주신 구자설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소중한 느낌들은 다음 집담회까지 쭈~욱 계속될 것 같습니다.
11월 4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릴 다음 53차 집담회 때는 더욱 많은 선생님들과 좋은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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